임씨 득성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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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임씨가 임이라는 성을 가지게 된 연원에 대해서는 신인설(神人說)과 비간설(比干說)의 두 가지 설이 전하여지고 있었다. 우리 임성이 어떠한 역사적 배경 즉 사회적 정치적 배경 속에서 어떠한 이념으로 득성을 했는지 자손된 각자가 이해함으로써 자성(自姓)의 긍지와 선조들의 유현한 여운을 가지게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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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인설은 지금으로부터 약 오천년 전 중국 당뇨(唐堯)의 요(堯)임금시대에 신인 한사람이 기주(冀州) 태원현(太原縣)의 두나무 아래로 내려오셨는데 그 용모가 심히 훌륭하고 또한 재주와 지혜가 남보다 뛰어남으로 임금께서 임(林)이라는 성을 내리셨다는 설이다.
唐堯初神人降于冀州太原縣雙木下容貌甚偉才知過人因以賜姓林氏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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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간설은 BC천년경 중국의 은(殷)나라 말엽 은나라 왕자 비간(比干)이 당대의 폭군(暴君) 주왕(紂王)의 숙부로서 주왕의 폭정을 만류하니 주왕이 예부터 충신의 염통에는 구멍이 아홉 개가 있다 했는데 진실로 충신이라면 염통 구멍이 아홉 개가 있겠다 하면서 비간을 죽이니 그의 아들 견(堅)에게도 해가 미칠까봐 장림산(長林山)에 은거하시어 성(姓)을 임(林)이라 하셨다는 설이다.
殷王子比干之子諱堅隱於長林山故以林字爲姓
예로부터 충신의 본보기로써 동몽선습(童蒙先習)에 비간(比干)이 충간(忠諫)하다 죽으니 이 같은 충신의 절개는 실로 역사에 드물다 라고 하고 있다.
比干忠諫而死忠臣之節實稀於史也
은(殷)나라 왕자 비간(比干)의 후예라고 하는 비간(比干)설을 믿고 다음과 같이 기술코자 한다. 이는 一九一四년 갑인년(甲寅年)에 울진임씨(蔚珍林氏)가 편찬한 세보(世譜)에 기록되어 있는 연원록(淵源錄)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성을 갖는 것은 예로부터 원인이 있으니 우리 임씨도 역시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은(殷)나라 왕자 비간(比干)의 아들 견(堅)이라는 분이 장림산에 숨어 살았었다는 이유로 성을 임이라 하였는바 임씨의 근원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이 사실이 동국씨족지(東國氏族誌)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노(魯)나라 때 공자(孔子)의 제자로 임방(林放)이라는 분이 계셨으니 장산후(長山侯)에 봉(封)하여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된 것으로 보아 공자가 BC 四○○년경 즉 지금으로부터 二四○○년 전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분으로 비간(比干)설을 뒷받침해주고있다. 따라서 임씨라는 성을 얻게 된 역사적 배경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자손 된 우리가 성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矜持)를 갖도록 하고자 한다. 따라서 임씨원류총서와 태시조 은태사 비간공전을 통하여 자세하게 이해하기 바란다.